2010.02.12
1.
학부를 졸업하던 마지막 해, 졸업식을 한 달 앞두고도 나는 갈 바를 알지 못했다. 그런 내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은 그저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시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인터내셔널 학생들을 섬기는 일과 유스사역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앞길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아버지를 향한 신뢰속에서 내 마음은 평안했다.
그 마지막 한달에, 정확히는 한 주만에, 하나님은 모든 일을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이루셨다. 내가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생각해왔던 일들이 다시 내게 복으로 돌아오는 경험을 했다. 총장님은 내게 인터내셔널 오피스의 풀타임 스탭 자리를 제안해 오셨다. 대학원과 박사과정까지 무료로 공부할 수 있고, 취업비자와 영주권까지 지원해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해 여름에 한국을 방문해 병무청에서 상황을 나누고 수락해도 문제 될것이 없다는 확인을 받은 후, 미국으로 돌아와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인터내셔널 오피스에서의 경험은 내게 너무나 유익했다. 쉽지 않았지만 많은 것을 배웠고 누렸다. 초기에 취업비자 수속을 기다리느라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에는 총장님이 개인적으로 부르셔서 영양 보충제와 식권을 선물로 주시고 밀린 빚을 갚으라며 장학금을 주시기도 하셨다. 결국 작년 1월에 취업비자가 나왔고, 다음 단계로 영주권 수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미진씨가 미국을 방문해서 함께 앞으로 어떻게 걸어갈지를 그려보기로 했다. 모든 것이 감사했다.
2.
하지만, 갑작스럽게 닥친 세계 경제 공황은 이 모든 것을 날려버렸다. 미국에서도 기업들이 파산하고 살아남기 위해 직원들을 정리해고 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사립 기독교 대학으로서 재정의 많은 부분을 기부에 의존하는 DBU도 역시 상황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총장님은 DBU의 직원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여러 노력들을 기울이셨다.
결국 Cabinet학교 임원 모임에서 내 영주권 수속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 DBU는 모든 것을 법대로 진행하기 때문에 지난 번 취업비자 수속에서도 빠른 수속, 변호사 등을 포함한 모든 비용을 학교측에서 전부 부담해 주었다. 그러나 그 말은 영주권 수속에 들어갈 비용 역시 모두 학교에서 부담하기 때문에 당시 학교 재정 상황에서 재고려되어야만 했음을 의미했다. 노동성에서 요구하는 Prevailing Wage까지 내 연봉을 조절해야 하는 점, Hiring Freeze인 상황에서 거짓으로 Labor Certification 수속을 진행할 수 없는 점 등 문제가 많았다.
무엇보다 DBU에서 이미 취업비자를 도와주었으므로, 학교측에서는 미국법에서 내가 일할 수 있는 상황을 다 갖추어 주었던 셈이다. 그러나 나는 한국의 군대 때문에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영주권이 없이는 한국으로 돌아가 군복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 쪽에서는 문제가 없었지만, 한국에서의 상황이 문제였다.
혼란스러웠다. 이 결정은 미진씨가 미국을 방문하기 한달 전에 이루어졌다. 결국 난 그녀를 다시 빈 손으로 맞아야 했다. 미래를 그려보던 캔버스는 다시 백지가 되었고, 우리는 기도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그녀는 돌아갔다.
영주권 수속이 취소되었다는 것은 그 해 안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었다. 졸업하려면 아직 일년이 넘게 남았었던 상황이어서, 조금이라도 빨리 졸업할 수 있도록 해보려고 애를 썼다. 풀타임으로 일하면 한학기에 두과목 이상을 듣지 못하는 규정이 있지만, 양해를 구하고 수업들을 꽉꽉 채워 들었다. 여름학기에만 3과목을 들었다. 풀타임으로 일하고 여름학기를 9학점을 듣고, 여름의Youth 사역을 병행하면서 나는 내 내면의 고민과 씨름해야했다.
무엇보다 나를 힘들게 했던 것은 내 부르심에 대한 혼란이었다. 하나님은 나를 어디로 부르셨는가? 마지막 세대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보게 하시면서 다음 세대를 세우고 이끌도록 하시겠다던 비전은 내 착각이었는가. 지금까지의 인도하심을 보면서 확신해왔던 부르심, 그리고 그에 따라 그려온 미래에 대한 그림들, 미국에 남아 정착하면서 미진씨가 레지던트가 끝나는대로 결혼해서 미국에 들어오고 그녀가 미국의사자격고시에 합격할 때까지 후원하고 이어서 내가 공부를 하고… 이 모든 것들이 다 아무것도 아닌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그 뜨거운 여름을 지내면서 하나님은 다시 나를 풀무불로 연단하셨다. 내 눈을 다시 당신께로 이끄셨다. 내 삶의 비전이 어떤 직업이나 특정 일이 아닌, 당신 자체 이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셨다. 그리고 믿음을 요구하셨다. 아버지의 선하신 손을 넘어, 아버지를 신뢰하는 믿음. 그 분과의 사랑의 관계안에서 자유를 얻게하는 그 믿음.
한 학기만 더 하면 졸업할 수 있었지만, 병무청에서 내 여행기간을 연장해주기 위해서는 행정 절차상 I-20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취업비자로 신분이 바뀌어서 I-20를 발급받을 수가 없었다. 실제로 공부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여러 서류들을 제출했어도 2번을 거절당했다. 12월 중순이 다 되도록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러는 중에도 하나님은 나를 평안하게 하셨다. 나를 겸손하게 하셨다. “마지막” 이라는 단어는 마치 마법과도 같이 내 삶을 새롭게 했다. 내게 주어진 모든 일상들을 소중하게 돌아보고 감사할 수 있게 해주었다. 하나님의 뜻이 돌아가게 하는 것일 상황을 준비하면서 사역과 일과 여러가지를 마무리하면서도 내 마음은 평안하고 감사했다. 내게 주어진 아주 작아 보이는 일들까지 기쁨으로 누리며 최선을 다했다.
3.
결국 12월 중순이 넘어서 병무청에서 연장신청을 허가해주었다. 1년을 더 머물 수 있게 된 것이다. 1년이면 대학원을 졸업할 수 있고, 무엇보다 6년이 넘게 스카이패스 크레딧카드만 쓰면서 마일리지를 모으며 기다리고 준비해오던, 부모님을 미국에 한 번 모시는 것이 가능케 된 것이다. 너무나 감사했다.
12월 말부터 새해 1월로 넘어가는 주에 나는 Urbana Mission Conference에 참석했다. St. Louis에서 열린 이 선교대회는 다른 미션 컨퍼런스의 어머니라 불릴 만큼 유명한 대회다. 수업이기도, 약간의 일이기도 했지만, 특별히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데 더 없이 좋을 기회가 될 것 같았다.
신기하게도 이 대회에서 하나님은 여러 방법으로 내게 다시 부르심에 대해서 확신을 주셨다. Urbana 를 진행하는 InterVarsity는 IFES의 미국 버전이다. 한국에서 IVF 훈련을 받았던 나로서는 매일 아침의 Inductive Bible Study가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으로 오게 된 계기가 되었던 LT에서의 귀납적 성경 연구를 떠오르게 했다. 들었던 선택강의들부터 만나는 사람들, 갑작스레 걸려온 전화등 하나님은 여러가지 일들을 통해서 내가 미국에 온것이 당신의 부르심이 었다는 것과 의료선교에 대한 재확인을 해주셨다. 하나님께 정말 하나님 뜻이거든 Confirm 해달라는 기도를 드리며 달라스로 돌아왔다.
4.
작년 크리스마스 조금 전에 총장님이 나를 갑자기 총장실로 부르셨다. 총장실로 올라가면서 무슨 일일까 생각하며 기도했다. 도착하니 DBU에서 새로 시작하는 Music Business 전공을 맡아 부임하신 교수님과 Christy가 이미 와 있었다. 총장님은 이번에 전공을 시작하면서 레코딩 스튜디오를 만드는데 DBU 앨범을 만들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그리고는 내게 크리스티와 함께 The Prayer를 불러 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영광이라고 대답했다. 총장님은 할 이야기가 있으니 잠시 밖에서 기다려 달라고 하셨다.
대기실에서 총장님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지난 시간들이 지나갔다. 여름 이후 총장님을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여러번 있었다. 하루는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학교 짐에 운동하러 갔더 날이었다. 운동이 끝나고 체중계에 올라갔는데 한 20파운드가 넘게 체중이 늘어서 깜짝 놀랐었다. 그런데 그 때 누군가가 킥킥대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총장님이 발로 장난을 치신 것이었다. 같이 한참을 웃었다.
총장님이 잘 지내고 있냐고 물으셨다. 그냥 잘 지낸다고 이야기하니 내 눈을 다시 보시면서 또박또박 정말 잘 지내고 있냐고 물으셨다. 목구멍까지 "총장님, 지금 제게 무슨 일이 일어난지 아십니까? 캐비넷에서 영주권 수속을 취소했다고요." 하는 말이 치솟아 올라왔지만 꿀꺽 삼켰다. 네 잘 지내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그 뒤로도 몇번이나 총장님이 물어보실 때가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내 상황을 나누지 않았다. 무엇인가가 나를 막았다. 굳이 총장님이 물어보시는 거라면 한번 총장님을 찾아가 네 상황을 나누는 것이 어떻게냐는 목사님과 아버지의 권면에 한번은 정말로 이야기를 하리라 마음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큐티말씀을 통해서 국민을 계수하는 다윗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을 주셨다. 결국 나는 총장님께 끝까지 이야기 하지 않았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제 입에 재갈을 물리소서. 당신이 원하는 말만 하게 하소서. 총장님과 사람들이 나오고 다들 떠난 뒤에 총장님은 나를 다시 불러들이셨다. 어떻게 지내냐고 물으신다. 잘 지내고 있습니다. 학교나 일은 어떻냐.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은 없냐. 없습니다. 밥은 잘 먹냐, 빚은 다 갚았냐... 총장님은 계속해서 물어보셨고, 마지막으로 내가 정말 특별히 너를 도와줄 일은 없냐고 물으셨다. 나는 이미 충분히 저를 도와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총장님은 내게 식권을 몇 장 주셨다.
오피스로 돌아오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왜 말하지 않았나. 말할 것을 그랬나. 그러나 끝에는 기도하고 한 이야기니 하나님께서 막으셨겠지 하고 결론을 내리고 마음을 비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보다 하고.
5.
며칠 뒤 International Graduation Reception 이 있었다. 이 행사는 내가 총괄 지휘하는 행사인데 여러 부총장님들과 총장님까지 모시는 행사다. 행사가 끝나고 총장님이 떠나시면서 내게 다시 한번 당신을 찾아오라고 하셨다. 며칠뒤 총장님이 다시 나를 부르셨다. 이번에는 댁으로 부르셨다. 또 무슨 일이실까. 만약 이번에도 동일하게 물으시면 이야기를 해볼까요? 이런저런 생각 섞인 기도를 하며 올라갔다.
리셉션이 끝나고 총장님과 내가 남았다. 총장님이 다시 내게 말씀하셨다. 대니얼, 주께서 자꾸만 내게 너를 도우라는 마음을 주신다. 내가 너를 뭔가 도와야 한다는데, 나는 그게 무엇인지 모르겠다. 지금 네가 내게 무언가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솔직하게 내게 이야기해달라.
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다른 이야기들로 시작했지만, 결국에는 영주권 이야기가 나오고 말았다. 총장님께 "그 분들이 영주권 수속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라고 말씀을 드리자, "그 분들이 누구냐"고 물으셨다. 캐비넷입니다. 말씀드렸다. 총장님은 다음 미팅에 가셔야 하셨고, 떠나시면서 당신을 다시 한번 찾아와 영주권 관련 이야기를 다시 해달라고 하셨다.
크리스마스 이브 전날에 나를 다시 한번 부르시더니 선물이라며 보너스를 주셨고 나를 안아주셨다. Urbana 미션 컨퍼런스 다녀와서 다시 한번 이야기하자고 하셨다.
6.
미션 컨퍼런스를 다녀온 후, 다시 총장님을 만났다. 총장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으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왜 나에게 그동안 이야기하지 않았냐고. 대답했다. 첫째는 이제 내가 미국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은 1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영주권이 1년 안에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변호사를 통해서 들었습니다. 둘째는 내가 총장님께 직접 말씀을 드리면 내 위의 리더십들과 캐비넷을 넘어가는 것이 될 것 같아서 그랬습니다. 나는 DBU 리더십들께 진심으로 감사하고 그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나도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다. 그래서 한번은 정말 말씀을 드리려고 했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 마음을 주셨고, 그래서 결국에는 말씀을 드리지 않았었습니다.. 그렇게 대답했다.
말씀을 들으신 총장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가 간다고 하셨다. 그러시더니 그럼 1년 안에 영주권이 나오면 괜찮은거냐고 물으셨다. 약간 당황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더니 바로 나를 데리고 총장실 옆의 General Counsel 학교 법무실로 나를 데리고 가셨다. 학교 General Counsel인 Dan Malone에게 나를 데리고 가시더니 내가 대니얼의 봉급이나 직위는 다 책임을 질테니 1년 안에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타진해보라고 하셨다.
내가 Dan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동안 총장님은 내 상관인 Mrs. Brown과 우리 부서 부총장님이신 Dr. Dowd에게 직접 전화를 하셔서 당신의 뜻을 말씀해주셨다. 며칠 뒤에는 학교에서 주최하는 행사에서 내가 노래를 부를 일이 있었는데, 행사가 끝나고 나를 다시 만나셔서 따로 다시 이야기를 하셨다. 어떻게 되었느냐. 변호사들이 지금 상황을 알아보고 있지만 지금으로서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러자 총장님이 물으셨다. 대니얼은 미국에 남고 싶은가? 아닙니다. 그럼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나? 아닙니다. 그럼 뭔가? 저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에 있기 원합니다. 알겠다. 만약 미국에 남게 되면 여자친구는 어떻게 할 건가? 여자친구는 오고 싶어 하는가? 같이 기도중입니다. 총장님은 말씀하셨다. 한번 시도해보고 만약 되면 하나님 뜻이고 안되어도 하나님 뜻이 아니겠는가?
다음날 총장님은 공문을 보내셨다. 그 동안 내게 한 말을 정말 공식 서한으로 만드셔서 내 상관들과 변호사에게 보내주셨다. DBU 측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대니얼을 돕고 싶다.
7.
3주 전 월요일에 Dan이 갑자기 나를 불렀다. 올라가보니 한국의 변호사들과 컨퍼런스 콜을 하자고 하셨다. 알고보니 에릭 브런마이어 부총장이 현재 한국의 DBU Asia와 같이 일하는 변호사 그룹과 연결을 해준 것이었다. Bkl이라고 불리는 이 회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삼성, SK와 같은 대기업과 같이 일하는 그룹으로 한국과 미국에서 공부하고 양쪽 자격증을 다 가지고 영어에도 능통한 실력자들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다.
통화가 시작되었다. 시간마다 돈이므로 본론부터 들어가자고 한다. 첫 질문이 박경환씨 석사과정으로 현재 미국에 머물수 없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였다. 상황을 설명하고 병무청에서 어떻게 공식허가를 받았으며 관계자의 이름과 연락처를 다 제공했다. 이야기가 계속 진행되는데 옆에서 듣던 Dan이 끼어들면서 나를 변호해준다."이 부분은 법과 관련된 것은 아니지만 당신들이 꼭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이야기합니다. 지금 이 영주권 수속은 대니얼이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총장님이 개인적인 호의로 강하게 제안하셨고 오히려 대니얼은 숨기지 않고 한국의 병무 관련 상황을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래서 DBU가 이런 일들을 진행하고 방법을 찾아볼 수 있도록 대니얼이 허락해준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주십시오."
이날의 큐티말씀은 베데스다 연못의 앉은뱅이 이야기였다. 그에게 다가온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을 때 병자는 나를 물에 던져줄 사람이 없다는 어긋나는 대답을 한다. 이에 예수님은 네가 일어나 걸으라 하시고 병자가 걷게 되는 이야기였다. 하나님께 무슨 뜻인지 여쭈며 묵상했더니 병자와 내 모습이 겹쳐졌다. 하나님께서 네가 남고자 하느냐 물으시는데 나는 영주권은 1년만에 안나온대요 하며 내 수준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여지껐 네가 남고 싶느냐는 질문에 나는 어디에 남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있으라하시는 곳 그곳에 있을 뿐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수님이 병자에게 낫고자 하느냐 질문하신 배경에는 그가 낫기를 원하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의 인도하심을 통해서 당신의 뜻을 보이셨음에도 나는 여전히 믿음을 갇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도했다. 주님, 당신이 제가 여기 남기를 원하신다면 저도 그렇게 되기 원합니다. 믿음으로 기도하겠습니다.
8.
목요일에 미국측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1년안에 영주권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은 없다는 내용이었다. 금요일에는 한국측에서 연락이 왔다. 자신들이 조사한 결과 올해안에 영주권이 나오지 않으면 돌아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월요일에 병무청의 권동혁씨에게 직접 전화해서 마지막 결론을 전달해주겠다고 했다.
금요일 토요일에는 청년부 수련회가 있었다. Passion and Direction 2010이라는 주제의 수련회에서 나는 토요일에 말씀을 나누었다. 내 안의 이야기를 그대로 나누었다.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행에서 많은 경우 목적지만을 생각하면서 여행의 의미를 잃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께서 여행을 디자인 하셨고, 무엇보다 그 분이 나와 동행하신다면 그 여행은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보다도 그 분 자체에게 관한 것이다. 그 분이 인도하시므로 목적지에는 반드시 도달할 것이다. 보통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과 연결되는 그림 - 마치 두 길 중에서 하나를 잘못 선택하면 모든 것을 망치는 것이고 실패하는 것이라는 - 은 뭔가가 적합하지 않다. 오히려 그분과 동행하며 그 분을 누리는 것, 그 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그 한 걸음에서 그 분이 준비하신 코스와 주변 경관과 감상하고 누리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 그것이 참된 여행이라는 이야기였다.
이런 상황 가운데서도 마음이 평안했다. 하나님이 너무나 크셔서 내 앞의 문제가 그리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는 듯한 그런 느낌. 선하신 아버지, 믿음. 주일에는 목사님께서 창세기 12장 1-3절 말씀으로 설교하셨다. 내가 한국을 떠나 미국에 올때 받았던 말씀. 하나님께서 다시 한번 확인해주시는 것 같았다. 나를 믿으라.
9.
월요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직장 이메일을 열었다. 변호사들의 답장이 왔다. 길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반드시 올해 안에 돌아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말씀을 열었다. 오병이어의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물으셨다. 어떻게 이사람들을 다 먹일 수 있겠느냐. 그 다음 문장이 내눈에 들어왔다. 이는 주께서 친히 어찌 하실 것을 아시고 빌립을 시험코자 하심어었더라.
기도했다. 주님, 무엇이 당신의 뜻입니까? 병무청에서도 안된다 그러고 영사관들 다 전화해봤지만 상황은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다고 하고, 변호사들도 다 안된다고 하는데 하나님 제 믿음을 시험하시는 건가요? 계속해서 기도하는데 하나님이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걷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이제 현실은 명확하다. 그리고 말씀도 명확하다. 그래서 답도 명확하다.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걷자.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