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은 쉽게 느껴졌다. 지난 번에 치렀을 때는 분명 굉장히 어렵게 느껴졌었는데. 시험이 끝나고 나서 아무래도 통과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비록 이틀밖에 공부하지 못했는데도 정말 하나님이 도와주셨나보다 했다. 접수처에 이르자 시험결과를 출력해 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받아보니, 맙소사. 또 떨어졌다.
암담했다. 시험장을 나와 차에 들어와 잠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건 뭔가. 학교에 전화해서 이제 어떻게 되는 지 알아보니 이제 나도 새 커리큘럼으로 전환되고 따라서 5개의 시험을 더 쳐야한단다. 맙소사. 또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붇겠구나. 막막했다.
오후에 은선이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이제 은선이는 김생명샘 선교사로 이라크로 떠난다. 겨우 떠나기 하루전에 잠시 만날 수 있었다. 은선이를 만나러 이동하면서 내 생각은 복잡했다. 왜 더 공부하지 못했나 하는 부끄러움과 동시에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는 정당화에서 화가 나기도 했다. 앞으로 3개월 뒤면 돌아가야 될지도 모르는데 이 쪽으로는 이제 완전히 막히게 된건데.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시는 것일까.
은선이를 만나기 전 무엇을 줄까 하다가 아무래도 돈이 가장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ATM 앞에 가서 잠시 기도했다. 상당히 큰 액수가 마음에 떠올랐다. 내 현재 자금 상황 때문에 잠시 망설였다. 다시 기도했는데 역시 동일했다. 마음 먹고 돈을 인출한 후 카드와 함께 동봉하고 은선이 집으로 갔다.
오랜만에 은선이를 만났다. 얼굴이 많이 밝아졌다. 무엇이 먹고 싶은지 물었다. 맛있는 거 사주겠다고 했는데 결국 Chipotle로 왔다. 나중에 들었지만, 감사하게도 최근에 긴장해서 음식을 잘 못먹었는데 맛있게 잘 먹을 수 있었다고 했다. 오랜만에 이야기하며 지난 시간들을 함께 더듬어 보며 웃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했다.
처음으로 한나누나와 은선 자매를 만난 것은 인터콥 비전스쿨에서 찬양인도를 하면서였다. 비록 자매 사이지만 둘은 참 달랐다. 삼성에서 일하면서 인터콥 간사로 섬기던 한나누나, 그리고 은선이는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어린 학생이었다. 당시 여러 지체들과 함께 참 즐겁고 귀한 시간을 보냈었다.
그러나 2년전 안타까운 사건으로 둘은 부모님을 한번에 잃었다. 그 후 1년 뒤에 한나 누나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이라크로 선교를 떠났다.은선이는 그동안 누나에게 의지해서 살아왔었는데 언니가 떠난 뒤로 그야말로 완전한 고아의 경험을 했다고 했다. 은선이는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후, ‘왜’ 라는 질문을 한번도 멈춘 적이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 경험은 하나님의 계획이었다. 은선이는 새로운 삶을 경험했다. 특별히인터콥을 통해서 친해진 한 부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다고 했다. 부모님의 장례식날, 그 부부는 결혼식이었다. 그날 그 언니는 화장도 하지 않은채 장례식장에 왔다고 했다.
한나누나가 떠난 뒤 은선이는 혼자 살게 되었다. 그러자 이 부부가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은선이는 신혼 부부에게 폐 끼치는 것이 싫어서 여러 다른 핑계를 대며 거절했단다. 하지만 이 부부는 끈질기게 은선이를 설득했고 결국 반강제로 짐을 나르고 문제들을 하나하나 대신 해결하여 자신들의 집에 데리고 들어왔다.
은선이는 그 부부를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했다. 부부는 돈을 한 푼도 받지 않아서 결국 은선이는 그동안 갖고 있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부부는 은선이에게 사랑을 쏟아부어주었고 은선이는 그동안 내면에 갖고 있던 여러 상처들을 치유받았다고 했다.
어느날 그 부부의 결혼 기념일이었다. 즉 은선이로서는 부모님의 기일이었다. 그 부부는 기념일을 기념하지 않았고 은선이는 이날 하나님의 마음을 선명하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이 날 그녀는 자신을 그토록 괴롭히던 ‘왜’라는 질문에서 자유케 되었다고 했다. 질문의 답은 얻지 못했다. 그러나 그녀는 하나님의 사랑이 자신의 아픔을 덮는 것을 느꼈다고 했다. 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의 고통을 초월하는 위대한 것임을 깨달았고 그것이 자신에게 해답이 되었다고 했다.
결국 그녀는 이 고아의 경험을 통해 이제 영적인 고아들을 찾아가 그 사랑을 나누고 싶다고 했다. 은선이는 이 모든 이야기를 그녀답게 참 아이처럼 내 앞에 풀었다. 나는 그 순수한 모습을 보며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았다. 왜 세상에 악이 존재하는가에 대한 답, 인간 역사의 그 지성들이 찾지못한 그것을, 그녀는 갖고 있었다.
고통가운데서 완성되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이 죽음과 맞닿아 있는 그 역설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일 뿐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녀의 미소를 보며 나는 하나님을 찬양할 수 밖에 없었다.
그녀를 집에 두고 돌아오면서 나는 다시 내 상황을 보았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이 실패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보았는가. 부끄러움에 부인하고 회피하고 싶은 내 실패를 치열하게 끌어안기로 했다. 그 실패에서 배우기로 했다. 고통스럽고 힘들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임을 믿고. 열심히 공부하자. 여지껐 해왔던 것처럼 벼락치기로 시험을 위해 공부했다가 끝나면 다 잊어버리는 공부는 이제 그만하자. 지금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공부하는 것이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것임을 기억하자.
그녀와의 대화에서 나는 여러 조언을 해주었다. 그러나 나는 마치 톨스토이의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물위를 뛰어와 어떻게 기도하는 지를 물었던 삼인을 대한 사제와도 같았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그녀는 그 사랑을 죽음을 통해 배웠다. 그녀가 품을 민족이 그 사랑을 통해 더이상 고아가 아닌 자녀로 회복될것을 믿는다.
Love God, Love People